[박물관 속 문화유산] 오늘부터 요리한다! 토기의 등장
박물관 속 문화유산 # 3
1. 최초의 그릇 탄생과 문양
어떤 계기인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연한 기회에 흙을 구우면 단단해진다 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류에게 최초의 그릇인 토기가 생기고 난 후 생활이 엄청 편리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신석기 시대의 토기로 빗살무늬토기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먼저 생긴 토기가 있습니다.
토기에 덧띠를 더한 덧무늬 토기, 손으로 눌러서 문양을 낸 누른무늬 토기 등과 함께 빗살무늬 토기가 등장했으며, 신석시시대 토기 중 빗살무늬토기는 기원전 4000년 전에 한반도 전역에서 유행한 토기입니다.
바닥이 뾰족한 포탄모양의 형태를 하고 토기 겉면에는 점과 선으로 구성된 기하학적 문양이 장식하고 있습니다. 빗살무늬 토기는 아가리-몸통-바닥의 세 부분으로 나누고, 각 부분에 다른 문양을 채워넣었는데 점차 바닥과 몸통의 문양을 생략하거나 같은 문양만 넣는 식으로 변화합니다.
한반도의 지역마다 빗살무늬 토기의 모양이 조금씩 달랐는데, 낙동강과 영산강을 중심으로하는 남부지역에서는 아가리가 넓고 높이가 낮으며 바닥도 둥근 형태입니다. 한편 중부 일대를 포함하는 동북지역과 압록강을 중심으로 하는 서북지역의 빗살무늬토기는 다른 지역에 비해 굉장히 납작한 것이 특징입니다.
2. 빗살무늬 토기의 용도 = 보관? 요리?
어떤 계기인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연한 기회에 흙을 구우면 단단해진다 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류에게 최초의 그릇인 토기가 생기고 난 후 생활이 엄청 편리해지게 되었습니다.
토기가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동물의 가죽이나 식물의 줄기를 이용하여 간단한 주머니를 만들어 물건을 담아 사용하였습니다. 운반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들이었기 때문에 요리를 위해 사용할 수는 없었습니다.
토기의 발명은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바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불을 이용한 구운 요리 외에도 수증기를 이용한 삶는 요리부터 끓이는 요리가 가능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사람들의 영양 상태를 개선하고 생존할 수 있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조금 더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선택지가 생겨나게 되었으며 이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과연 어떤 것들을 요리해서 먹었을까?
토기가 발명된 시기는 신석기 시대로 농사가 시작된 시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 2지구 2호 주거지에서 피 또는 조로 보이는 탄화 곡물이 출토되었으며, 황해도 봉산군 마산리 유적, 평양 남경 유적에서는 조가 출토되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한반도에서 신석기시대 조를 중심으로 밭농사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원전 4000년 경으로 생각되는 유적에서 발견된 곡물들인데, 토기에 달라 붙어있거나 한 흔적은 아니라 아쉬움을 남깁니다.
토기에 직접적으로 달라붙어 있는 곡식들이 발견된 예는 청동기 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에서 자주 보고되었습니다. 경기도 여주군 흔암리 유적, 부여 송국리, 강릉 교동 등의 유적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탄화미가 출토된 적이 있고 보리, 조, 수수 등 곡물이 좀 더 다양해졌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볍씨 자국이 찍힌 토기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유적들은 대개 기원전 2000년대 조성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어서 기원전 4000~2000년 사이에 토기를 사용해 곡물을 끓여 먹는 방법이 널리 쓰이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의 주인공 '빗살무늬토기'에는 불로 가열되어 탄화된 곡물이 없을까? 현재까지 많은 과학분석과 고고학 발굴들이 이어지고 있어 벼농사의 시기에 대한 고찰과 신석기 시대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최근
서산 대죽리 패총 출토된 토기에 대한 연구에서 보면 무늬가 특별히 보이지 않는 파편 중에 흑색 탄화물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곡물인지 알 수는 없으나 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하던 사용하던 사람들이 토기를 활용한 요리를 하고 있었음을 상상해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듭니다.
조금 더 확실한 증거들이 나오면 좋겠으나 대체로 주거지에서 곡물, 토기가 함께 등장하는 신석기 유적들을 볼 수 있으나 탄화된 곡물들이 토기에 달라붙어서 발견되는 사례는 청동기 시대부터 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토기 발명 이후 물건을 담아 보관하다가 요리를 하는 용도까지 발전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참고 홈페이지
암사동 선사유적 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참고 문헌
안덕임, 이찬희, 서산 대죽리 패총 출토 빗살무늬토기의 제작특성과 고고과학적 의미,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재 55,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