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탐방/박물관 속 문화유산

[박물관 속 문화유산] 우리도 기록을 남겨요! 암각화를 그린 사람들

데구르 도이 2023. 10. 15. 01:35

박물관 속 문화유산 # 2

1. 우리도 기록을 남겨요!

옛날에 어떤 사람들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땅에 살았을까?에 대한 궁금증은 쉽게 풀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먹거리, 놀거리부터 자는 곳 등을 물어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문자를 사용해 기록을 남기지 못한 시대에 사람들의 흔적을 복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문자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석기~청동기 시대의 흔적을 우리가 배우고 있는 것은 그 당시의 무엇인가가 '현대'의 우리들에게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저번 시간에 소개한 주먹도끼와 같은 발굴된 유물이 있으며, 그 다음으로는 벽화가 흔적을 복원하는 것에 가장 큰 도움을 줍니다.

 

우리나라에도 국가가 형성되기 이전 대표적인 벽화가 남아 있는데 바로 울산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선사고대관 첫 장면에 거대한 반구대 대곡리 암각화가 위치하고 있을만큼 당시의 벽화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울산 반구대에는 대곡리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 2개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울산에 살았던 다양한 동물을 비롯하여 동물을 사냥하는 사람들의 모습, 기하학 문양 패턴 등이 남아 있어 당시 종교관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울산 반구대 대곡리 암각화
울산 반구대 천전리 암각화
사진출처(반구대 암각화)

 

2. 언제 어떤 내용을 그려 넣었을까?

1) 반구대 암각화가 조성된 시기는?

반구대 암각화는 언제쯤 만들어졌을까요? 아무래도 반구대 암각화는 국가에서 주도해서 특정 목적으로 조성한 것도 아니며, 완성 기간을 둔 암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시간에 대해서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즉 반구대 주변에 거주했던 사람들이 주술적 의미를 담아 제작했으며, 암각화에 덧씌어져 그림이 그려지기도 하면서 시간을 달리하는 그림들이 여럿 겹쳐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러다보니 학자들 간 가장 논란이 있는 부분은 바로 조성연대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주제는 유적 발견 당시부터 논쟁의 대상이었고 지금까지도 일부 연구자들 사이에 견해차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학자마다 주장한 시기의 편차가 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연구자 손보기 문명대 김원룡
조성 연대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손보기 교수는 구석기, 문명대 교수님 신석기, 김원룡 교수는 청동기 시대로 조성 시기를 파악했습니다. 현재는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로 압축되어 두 시기 중 어떤 시기에 조성이 되었는지에 대해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의 조성 시기를 알아보기 위해서 문양이 표현된 기법, 문양의 양식 마지막으로 암각화에서 보이는 다양한 내용을 토대로 고고학적 유물과 식생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먼저 문명대 교수는 문명대는 조사보고서에서 반구대 암각화를 천전리 암각화와 대곡리 암각화로 구성되어 있다고 밝혔습니다. 반구대 암각화 그림의 성격을 분석하여 노르웨이, 러시아 등지의 국외 암각화의 비교를 통하여 수렵, 어로를 하던 사람들이 제작한 사냥미술로 대곡리 암각화를 판단하였습니다. 대곡리 암각화에는 많은 동물들과 사냥하는 모습이 포함되어 있어 농경이 중심으로 변화하고 사냥이 부차적이던 청동기시대 그림들과 다르다고 보게 되었습니다. 즉 대곡리 암각화가 농경이 주로 이루어지는 청동기라면 농경과 관련한 그림들이 남았을 것이라는 추정입니다.

김원룡은 암각화 제작 도구를 금속도구인 철제 정으로 추정하였고 고래사냥 도구 형상을 노弩로 추정하여 유적연대를 철기를 동반하는 원삼국시대로 보아야 한다고 의견을 개진하셨습니다. 이후 김원룡은 청동기시대로 연대를 수정하였다. 이후에도 납득할만한 새로운 근거를 제시하거나 방법론에 대한 진지한 검토 없이 선학들의 견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인용하는 경우가 많아 김원룡 교수의 의견이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2000년 이후 보다 진전된 연구가 시도되었다. 황상일과 윤순옥은 고古울산만 환경분석을 통해 암각화에 표현된 고래사냥이 해수면 변동에 따른 환경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보았다. 이를 근거로 대곡리 암각화의 연대가 울산만이 최대로 확장되는 6,000년 전에서 고古굴화만이 소멸되는 3,000년 전 사이로 추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대곡리 암각화는 이 지역을 거주하는 사람들이 오랜 기간 신성한 장소로 믿어 오면서 예술, 종교활동을 이어나간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신석기 시대부터 식생이 변화해가는 청동기 시대까지 넓은 시기에 이 예술들이 쌓여 발현된 우리나라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라는 것은 확실하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2) 어떤 그림이 반구대 암각화에?

대곡리 반구대암각화는 내용상 크게 해양동물, 육지동물, 사람과 도구 및 기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반구대 대곡리 암각화는 처음에는 육지 동물들을 중심으로 벽화에 새겨졌으며, 선 새김 기법을 주로 그림을 그려나갔습니다. 이후 해양동물들을 위주로 그리게 되었으며, 이때는 면새김 기법을 위주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해양동물의 수가 많아지게 된 것은 해수면 변동에 따른 환경변화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반구대 대곡리 암각화는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곡리 암각화 사람모습 대곡리 암각화 해양동물

대곡리 암각화 육지동물
사진출처(반구대 암각화)

천전리 암각화에서는 기하학 무늬들이 중심을 이루어 표현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하학무늬들이 중심을 이루게 된 것은 전체 모습을 모두 표현하는 것이 아닌 특정 일부분만 그려 추상적으로 표현하여도 염원의 대상을 이룰 수 있다는 주술적인 개념이 반영되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사슴을 많이 잡고 싶어 사슴을 벽화에 그리던 것에서 사슴의 뿔만 그려 그 의미를 대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그림들이 가능했던 것은 천전리 암각화가 있었던 곳이 이 지역 사람들에게 신성한 지역으로 여겨졌던 것에 있습니다. 천전리 각석의 벽화가 제단화로서 역할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모여 일종의 제의를 지내면서 염원을 담은 그림들을 하나씩 기록해 추상적인 의미를 담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천전리 각석이 위치한 지역이 당시 사람들에게만 신성한 장소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신라 법흥왕, 진흥왕 등의 왕들이 이곳을 지속적으로 방문해 천전리 각석 하단에 기록을 남긴 것입니다. 많은 인원들이 왕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는데, 오랜 기간동안 천전리 지역이 성스러운 지역으로 여겨졌던 것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생각됩니다.

몽골, 이흐두를지 유적 천전리 암각화
사진 출처 : 강삼혜, 천전리 암각화의 기하학적 문양과 선사미술, 강좌미술사,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11. 도 22, 도 23

 

3. 크리스마스의 기적 반구대 암각화

울산에 위치한 반구대암각화의 발견은 크리스마스의 선물로 불리고 있습니다. 주변 사찰의 불교문화유산을 조사하러 내려왔던 동국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은 주변 주민들의 신고로 암각화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1970년 12월, 반구대 천전리 암각화가 발견되었고 이어서 1971년 반구대 대곡리 암각화가 발견되어 국내 학계에 선사시대 암각화 처음으로 보고되었습니다. 두 암각화가 발견된 반구대 계곡은 오래 전부터 명승지로 알려진 곳이었습니다. 유적을 발견하고 조사했던 문명대 교수의 전언과 보고서에 따르면, 반구대라는 지명은 해골물로 유명한 신라시대 고승 원효가 머물렀던 반고사磻高寺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했다고 합니다.

1970년 12월 24일 조사단이 반구대를 찾았을 땐 1965년 건설된 댐으로 인해 계곡 하류는 이미 수몰된 상태였습니다. 이에 낙담한 일행이 최경환이란 마을주민의 안내를 받아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다 천전리 암각화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동국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에서 울산 지역에 불교 사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문명대 교수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학술 조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주민들과 조사단의 교류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한 주민이 천전리 암각화 외에도 대곡리에 호랑이 문양이 있다는 것을 조사단에 알렸고 8개월의 발굴 기획을 통해 비로소 1971년 12월 25일 반구대 대곡리 암각화 학술조사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암각화의 발견이 크리스마스에 이루어져 크리스마스의 선물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암각화가 잘 보존되어 후세에도 선사시대 문화유산이 잘 전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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